철학의 역사: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나이절 워버턴)

곽재률 2021. 2. 20. 04:05

간단한 철학 소개서이다.

이 저자는 철학 관련 대중 서적을 꽤나 쓰신 분이다.

옮긴이의 말과 같이, 좋아하는 철학자는 꽤나 깊게 쓸만 한데도, 다 균등한 수준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잘 소개했다.

하지만 책이 조금 두꺼워지더라도,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사 입문서라는 것을 의식해서 그런가,

너무 얕은 나머지, 구분감이 없어서, 더 이해하기 힘든 느낌.

조금만 더 철학 이론을 깊게 설명하거나, 철학자들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적었으면 어땠을까.

철학자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진짜 많은 데, 과감히 생략해서 아쉽다.

그래도, 시간대별로, 굵직한 철학자들을 소개해서, 철학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소개한 철학자를 짧게 나마 정리하자면,

 

소크라테스 (산파법,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논쟁학 추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바탕을 둔 서양철학의 본격적 시발점이다)

플라톤 (이데아론, "국가", 철인의 통치, 현상은 이데아에 대해 기만적이니, 현상을 그리는 예술을 금지함)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 "니코마 코스 윤리학", 행복을 위한 올바른 성품의 덕은 극단 사이에 있다는 중용론.)

피론 (극단적 회의론자,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어느 것에도 동요하지 않고, 마음쓰지 않는다. 결국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실천성,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증진하면 삶이 나아진다, 절제의 행복,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키프로스의 제논, 에픽테토스, 키케로, 세네카 (스토아 학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만 걱정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저야 한다, 노화와 죽음에 대해, 불평만 말고 최대한 삶을 활용해야 한다.

출항 후 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건 항해라고 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전능한 신이 만든 세상에 악이 있다는 문제에 대해서 자유의지 옹호를 주장, 원죄)

보에티우스 (모든 것을 아는 신인데,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을까라는 역설에 대해, 예정설이 아닌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는 신을 주장)

안셀무스 (존재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신보다 위대하니, 신은 존재해야만 한다는 존재론적 신 증명)

토마스 아퀴나스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그 자체는 원인을 갖지 않는 원인, 즉 신이 존재할 것이라는 제 1원인 논증)

마키아벨리 ("군주론", 인간의 본성을 낮게 평가, 지도자는 사랑보다는 두려움의 존재여야 한다. 여우와 사자가 되야 함)

토마스 홉스 (사회가 없는 자연 상태에서 자유 일부를 포기하고 사회 계약을 한다, "리바이어던", 주권자의 무한한 권력)

데카르트 ("성찰" "방법서설", 데카르트적 회의법, 코기토 에르고 숨,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 증명과, 신이 신 관념을 정신에 새겨 넣었다는 표징논증으로 선한 신을 증명)

파스칼 ("팡세", 파스칼의 내기,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안믿는 것보다 이득인 내기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범신론, 합리론, 자연 = 신, 결정론자지만, 감정에 예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

존 로크 ("어린아이의 상태는 백지 같다.", 사람과 인격체의 구분,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의 나는 자신과 동일한 인격체가 아니다.)

토마스 리드 (존 로크의 기억과 인격체의 주장을 삼단 논법의 모순으로 반발)

조지 버클리 (더 이상 관찰되지 않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론자, 비유물론자,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

라이프니츠 (충족이유율, 낙관론, 모든면에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세계가 아니지만, 이 형태로 우주를 만들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적은 악을 사용해서 많은 선을 만드는 세계인, 가능한 최선의 세계)

볼테르 (라이프니츠의 낙관론 비판, "캉디드"를 통해 자연적인 악, 고의적인 악을 이용해 낙관론 비판, 

캉디드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정원 = 유용한 일)

데이비드 흄 (매우 잘 설계된 자연 생물을 만든 것은 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계 논증", 설계 논증을 반박.

설계의 부산물을 통해, 설계자를 알수는 없다, 창조물을 이용하여, 창조주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쇠사슬에 매여 있다, 문명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일반의지(공동선)와 일치하는 행동을 하도록 돕는 법률제도를 만들어야 하여, 사회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판단이성비판", 현상 이면의 예지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현상계만 볼 수 있다,

선험적인 종합적 지식이 있다, 우리는 본유관념이 있냐의 합리론자와 경험론자들의 논쟁, 도덕 철학, 감정이 도덕성에 들어가선 안된다, 의무감의 도덕이 더욱 중요하다, 무조건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라고 주장. 도덕성을 정언명령으로 설명, 그 결과나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따라야 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

참고:brunch.co.kr/@brunchwint/23

 

칸트의 도덕적 신증명

(칸트의 인식론에서 윤리학까지) | 칸트의 도덕적 신 증명 1. 들어가는 말 근대를 시작하며 치열하게 다투었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대립하는 이 두 가지 이론을 종합한 칸트는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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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벤담 (공리주의, 최대 행복의 원리, 행복 계산법, 모든 사람은 한 명으로 간주된다, 마약같은 가상현실 기계로서 반박 가능하다.)

헤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 칸트의 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예지체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이 곧 실재고 그 이상은 없다고 주장,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역사는 무작위적이지 않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실재는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역사의 최종 목표는 그것의 이성의 전진을 통해 정신이 점진적이고 불가피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역사는 개인의 자유가 점차 증가한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했다. 또 변증법, 테제와 안티테제 그것의 충돌로 진테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완전한 자기 이해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된다. 실재의 자기 이해에 대한 도달을 철학자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쇼펜하우어 (비관론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실재는 의지로 존재함과 동시에 표상으로 존재한다. 표상은 칸트의 현상계와 동일하지만, 의지는 예지계와 다르다. 예지적 실재가 나누어져 있지 않고, 모든 것의 이면에 있는 단일하고 통일된 방향 없는 힘인 의지로서의 세계를 주장했다. 이 세계를 행동이나 예술 경험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지는 목적으로서의 의지가 아닌, 어떠한 목표도 없는 맹목적인 의지이다. 예술은 노력과 욕구의 끝없는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존 스튜어트 밀 (벤담의 제자, 모든 사람이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은 최소화하려는 욕구에서만 이끌리지 않는다, 만족하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적절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자유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보다 확대하는 것이 더 많은 행복을 산출한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진화론)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실존주의의 창시, 아브라함과 이삭의 예: 믿음의 고통과 진정한 의미, 믿음으로서의 단계, 믿음의 도약) 참고 : brunch.co.kr/@brunchwint/24#comment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와 사상

(공포와 전율과 실존의 삼단계를 중심으로) |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와 사상 1. 들어가는 말 한창 육아예능이 유행하는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시청하고 있다. 하지만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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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인류 전체의 역사는 계급투쟁이다. 사적 소유와 분업, 이로 인한 계급 사회는 노동을 억압하고 왜곡함으로써 인간 본질 실현을 막는다. 1. 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2.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3. 유적 본질로부터 소외되고, 4.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이러한 더욱이 극단적으로 바뀌어서 자본주의가 혁명으로 자멸할 것이라 주장, 사적 소유와 분업이 없는, 더 이상 착취당하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존재가 되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등장 할 것이라 주장, "공산당 선언", "경제학 - 철학 수고", 경제 요인으로 세상을 바라봄, 해석이 아닌, 실천적인 철학, 인간의 본성이 더 경쟁적이고, 탐욕적이라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시스템을 완성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참고 : 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ertinax&logNo=50087713768&categoryNo=42&parentCategoryNo=0&viewDate=&currentPage=20&postListTopCurrentPage=1&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20

 

노동 소외

이 젖소가 생산한 우유는 누가 마셨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 때문에 인간 소외가 발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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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사고의 현금 가치, 진리는 실제적으로 유용한 것, 실용주의, 어떠한 문장을 참으로 만드는 것은, 유용함에 따라 달려있다. 파스칼의 도박과 비슷한 논증, 러셀은 산타크로스를 예로 들어, 실용주의를 비판했다.)

니체 ("신은 죽었다", 선악의 저편, 니체에게 신의 죽음은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노예의 도덕, 위버멘시, 이성을 찬양한 칸트와 달리 니체는 감정과 비이성적인 힘을 강조)

프로이트 (무의식의 발견, 꿈의 해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정신분석학의 창시, 칼 포퍼는 정신분석학의 개념 대부분이 '반증 불가능'해서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

버트런드 러셀 (철학과 수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인 논리학, 집합론에서 문제를 찾음, 러셀의 역설: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만을 모두 면도해주는 이발사, 존재할 수 없다. 하나의 집합이 그 집합 자체를 지칭할 때 이런 유형의 역설이 생긴다.

'언어적 전회' 운동, 기술이론)

앨프레드 줄스 에이어 (의미 있는 진술과 허튼 소리인 진술을 나누는 원리 "검증 원리", 논리실증주의, 형이상학을 반대,

1. 그 문장은 정의에 의해 참인가?

2. 그 문장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

1.은 분석적 진술이고, 2. 는 종합적 진술이다. 이 외의 의견은 궤변과 착각 밖에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자기 파괴적이다.

1. 이 이론은 정의에 의해 참인지 명백하지 않고,

2. 이 이론을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관찰이 존재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볼 때 논리실증주의는 무의미하다.)

장 폴 사르트르,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실존주의, 인간은 목적과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자유롭다.

자유에는 책임이 있어서 대다수는 자유를 피하려고, 자유롭지 않은 척을 한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삶의 고통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명칭은 실존이 앞선다는 것을 깨닫고, 그 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에서 비롯되었다.

보부아르는 "제 2의 성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주장하면서 여성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조리한 의미 없는 삶이지만, 우리는 절망하고 자살하면 안되고, 시시포스가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카뮈는 말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언어 게임, 언어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언어의 사용 범위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유사성 용어'들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 이 말은 알 수 없는 것들을 논리실증주의처럼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라는 주장이 아니다. 이에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본 악의 평범성, 질문, 의문 하지 않는 것은 악을 초래할 수 있다.)

칼 포퍼 (일반화에 맞지 않는 단 한 번의 경우, 그 주장은 여전히 반박될 수 있다는 '귀납의 문제',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이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이다. 귀납을 통해서 이론을 얻는 것이 아닌, 가설, 추측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것을 반증하려고 가설을 실험한다. 어떠한 가설이든 중요한 특징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사과학과의 차이이다. 반증 불가능하면, 그것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다.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의 역사관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은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 주장한다.)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 방식에 대해 포퍼의 주장을 반박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사고의 틀이나 패러다임 안에서 연구를 하다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타날 때, 이해 방식 전체가 뒤집힌다는 것이다.)

필리파 풋, 주디스 자비스 톰슨 (트롤리 문제, 극단적인 문제라 생각 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전쟁, 낙태와 같은 데에 이 사고실험이 논쟁에 포함된다.)

존 롤스 ("정의론", 새롭고 더 좋은 사회의 설계의 문제,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다른 설계를 하고,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 정치적 사고를 왜곡한다.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라. 하지만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설계하라'

무지의 장막 뒤에서 훨씬 더 공정한 원리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 번째 원리: 자유의 원리는 결코 박탈되어서는 안될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두 번째 원리: 차등의 원리는 가장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다 동등한 부와 기회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태어날 때 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더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엘런 튜링, 존 설 (엘런 튜링은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주장 했고, 존 설은 중국어 방의 예를 통해, 이 게임을 통과해도, 기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지능이 없다고 주장했다.)

피터 싱어 (왜 연못에 빠진 아린아이의 생명은 급한 약속과 비싼 구두를 신어도, 마다하지 않고 연못에 띄어들고,

아프리카 수 많은 아이들의 굶주림과 치료 가능한 열대 질병은 돕지 않는가? 그는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돈 많은 누군가가 구할 거라는 생각, 우리가 도와주는 행동이 미치는 효과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

부패한 자선단체 말고도, 자립하도록 교육하거나, 진정한 도움을 주는 뛰어난 자선단체들이 있다.

우리는 거의 확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또한 피터 싱어는 안락사를 옹호하며, 동물의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동물을 먹지 않고도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육 방식이 너무 잔인하고,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을 이용한 의학 실험도 반대한다.

만약 동물에게 해를 주는 것이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유발한다면, 인간에게 해를 주는 편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고, 종차별을 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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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개인 정리겸 쓴 거라 중구난방이다.

직접 읽거나, 다른 철학사 서적을 읽는 걸 추천한다.

와.. 쓰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많은 철학자들을 이 책에서 소개 했구나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된 인물과, 그들의 철학관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존 롤스와, 피터 싱어에 대해 알게 되서 좋았다.

롤스의 무지의 장막 뒤에서의 세상을 설계한다는 사고 실험과,

차등의 원리, 부족할 수록 최대한의 기회를 줘야한다는 것.

운 좋게 좋은 환경과 조건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철학이 참 신선하다.

 

또 피터 싱어의 말이 내게 충격을 주었다.

내 오만스러움과는 반대로, 별반 다른게 없이 외면하고 있었구나. 기부 하나도 안했는데..

그토록 생각 했던, 많이 벌면 많이 나누어서 진짜 멋진 삶이 보여주겠단 각오도,

그냥 망상과 책임 회피일 뿐은 아닌지, 다시금 반성한다.

조만간 청렴하고 훌륭한 기부단체를 찾아서 기부를 해야겠다.

부모님 돈으로는 기부를 할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빨리, 엄청 크게 성공해서, 왕창 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지금이라도 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으니, 모은 돈으로 미약하게나마 해야 겠다.

그리고 기부를 하면 금전적 성공에 대해 욕심도 더 날 것이다.

요즘 무기력에 빠졌는데, 더 돈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많이 벌어서, 높은 퍼센트로 기부를 하고 싶다.

그만큼 내가 멋진 사람이 되서, 왕창 기부를 하면, 날보고 멋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사람도 생기겠고,

선순환이 되겠지.

 

롤스의 말 처럼, 난 지금 돈을 벌지 않는 백수이고, 여건이 좋지 않는 사람이니, 평등에 더 마음이 간다.

많이 벌면 많이 나눈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겠다는 각오.

과연 난 시간이 지난 후, 성공을 하고, 가정이 생겨도 이 고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다.

 

만약 철학에서 가장 크게 배워갈 것 하나를 꼽자면, 여러 의견을 알려준다는 점, 깊은 사고를 한다는 점 보다도,

자신의 길을 걸었다. 라는 점을 난 꼽을 것이다. 철학은 내게 그런 점이 크게 용기를 주었다.

이 책에서 보다 싶이, 철학자들은 존경받기도 하지만, 핍박받거나, 죽을때까지 인정받지 못하거나, 죽임까지 당한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조를 지킨 철학자도 있는데,

사회의 시선과, 주변의 시선과 맞지 않는다며 불평만한 내가 우스워진다.

내 논리로, 끝까지 맞다고 생각하는 건 지키고 실천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부여잡거나, 연설하고 단체를 만들어서 효과적으로 의사를 피력할 용기와 머리, 의지는 없다.

하지만 그냥 내가 우러나오는 살면,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까.

그게 멋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