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 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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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극단적으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청춘에 이루고 싶은 것, 잘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런 꿈을 꾸면서,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가도,
높은 기대치에 비해 초라한 결과를 보면 그냥 포기하고 싶고, 우울해진다.
이런 부담감과 잦은 실패에 짖이겨 더욱 게을러지고,
결국 삶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인생을 달마다 끊어서, 지나간 시간을 철저히 후회해본 적도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그냥 막연히 꿈을 꾸는 것이 쉽다.
그래서 청춘을 꿈을 찾는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먹을 것을 기웃기웃거리는 개마냥
정처없이 떠돌아다닌 것만 같다.
가진 것 없고, 능력 없는, 내세울 것 없는 청춘.
꿈꾸고, 부딪히고, 포기하고, 꿈꾸고, 부딪히고, 포기하고, 받아들이고,
그러다 결국 느끼는 건,
내 꿈은 그냥
그냥 어떤 질투 아니였을까.
누군가에게 두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압도적인 무언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니였을까.
삶이 이렇게, 더 쟁취하고, 더 올라가고, 더 가득 채우고, 더 우월감을 느끼고, 더 안주하고,
더, 더, 더, 더
나, 개인이 삶에서 진정으로 꿈꿔야 할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건
욕구를 채우는 것도, 억제하는 것도,
하루를 알차게 쓰려고 좋은 습관들로 채우는 것도,
편안함을, 걱정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막연히 거대한 꿈을 꾸는 것도,
노력하고 성취해서 상대적 우월감과 많은 인정을 받는 것도,
위의 것들을 적절히 섞어서 중용적인 삶을 가꾸는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사랑할 수 있는 것.
과거의 실수에는 위로와 용서, 교훈을, 캄캄한 미래에는 수긍과 응원, 축복을.
사랑은,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벽하지 않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이로써, 현재의 나 그대로를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사랑한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란 심리학 용어가,
사람에게 혼돈과 오해를 주지 않고 있나 생각해본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철저히 지켜본다.
끔찍한 과거, 참담할 것이라 예상되는 미래까지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앞의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
자신을 속이는게 성격이 된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자기애란 말은 과분한 말이자, 오해를 부르는 말이다.
그냥 영어로 나르시즘이라 표현하거나, 새로운 번역이 맞지 않나 생각해본다.
사랑은 주위로 흘러넘친다. 주위사람에게로, 더 나아가 인류애로, 모든 것을.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만약 내가 어느 책갈피에서 마지막 두 줄이 적힌 종이를 보면
행복할 것 같다.
이 사람, 제대로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구나. 좋은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