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아하는 시

Who has seen the wind?

곽재률 2021. 4. 28. 18:46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무의 잎들이 흔들렸을 때
바람이 그 사이를 지나갔어요.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무들이 머리를 수그릴 때
바람이 그 곁을 지나갔어요.

 

-Christina Georgina Rossetti <Who has see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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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람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도, 존재한다는 걸 안다.

 

바람이 왜 부는지, 저기압, 고기압, 열역학 법칙을 몰라도,

우리의 피부가 입자를 전자기력으로 느끼고, 전기신호의 전달 과정을 몰라도,

바람은 가끔 우리 주위를 지나가고, 우리는 그걸 느낀다.

어떤 현상이 관찰되면, 그것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

 

바람이 부는 원리를 알면 좋을까?  

두 과학자가 생각난다.

파인만은 과학자들이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망친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꽃의 생물학적 생존 전략, 현미경에서 관찰한 꽃 분자들의 배열도 아름답다고.

또, 이것을 안다고, 꽃이 아름답다는게 사라지는게 아니라고.

인간으로써 알 수 있는 한계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찾은 하나의 방식이라고.

세이건의 유명한 말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우주 공간의 창백한 푸른 점. 그 관찰로 인류애를 촉구했다.

거짓말 하나 없는 사실로써 전혀 과학적, 논리적이라곤 할 수 없는 인류애를 주장한다.

 

또 하나 확실한 건, 따뜻한 바람을, 자신을 위해 부는 신의 숨결로 생각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바람의 원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braid는 욕망에 관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대해 더 완벽히 알기 위해, 더 깊은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진엔딩을 보기 위해 별을 찾는다. 공략 없이 별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어려움은 오히려 도전의식을 자극해서 더 모으고 싶게 만든다.

별을 먼저 모은 사람들이 공략 영상을 만들어놨고, 이것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별을 찾는 엔딩을 본 사람이 더 게임을 잘한 사람일까?

그게 진엔딩이 맞긴 할까? 거꾸로 아닐까? 한번 더 해서 둘다 봐야하는 걸까?

이 시는 이 게임의 엔딩 크레딧에,

별을 다 모았든, 아니든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 구름은 정지되어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4시간 정도 기다리면, 왼쪽 언덕 넘어로 가먼, 별이 있다. 

 

과연 역경이 많은 삶이 좋을까? 그저 행복한 삶이 좋을까? 그럼 덜 행복한 삶은 덜 좋은가?

어떤 시기에 어떤 것을 해야 좋은 삶일까?

좋은 삶, 나쁜 삶이란 무엇일까?

어디까지 알아야, 무엇을 몰라야 좋은 것일까?

 

하나 확실한 건, 어쨌든 삶은 죽기 전까지 이어질 것이고,

삶의 과정 그 자체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니체나 실존주의의 선택과 포기를 하며 사는,

능동적 인간으로써 살아나갈 것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탁이나, 과학적 환원주의로 인과에 갇힌,

수동적 인간으로써 살아질 것인가.

 

내 주위에도 바람 같은 것이 많이 지나갈 것임을 안다.

크게 흔들리기도, 작아서 느끼지 못할지도,

그 바람이 어디서 온지 궁금할지도, 바람 그대로를 느낄지도,

결국에는 이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다짐해 본다.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결국 확실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게 진정한 모험가의 태도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