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유치환,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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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 중간 부분만 발췌해서 올린 줄 알았는데
이게 그냥 전문이다.
유치환 시인은 깃발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가을, 아니 벌써 5월이야,, 뭐 이제 여름이 오고, 가을도 오겠지,
낙엽을 쓸면서,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낙엽을 쓸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이쁘다.
같이 읽어요, 게시판의 수 많은 이별 시 중에, 이것에 끌린 이유는,
어쩌면 우울하지 않게 잘 표현했다.
참담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지난 사랑을 생각하면서, 쓸고 있는 시인이 상상이 된다.
잘 정리하고, 다시 올 봄을 위해, 잘 가꾸길 바라며, 낙엽을 쓸며.
9.
너를 새긴다.
더 팔 것도 없는 가슴이지만
시퍼렇게 날이 선 조각칼로
너를 새긴다.
너를 새기며,
날마다 나는 피 흘린다.
/이정하,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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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이별에 관한 시 중에서, 마음에 들었다.
좋은 시인을 찾았다. 이정하 시인.
황인찬 시인과 함께 꽤 좋은 시인을 찾았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 유명한 시 구절을 쓴 사람이었다.
난 직관적인 시를 좋아하긴 하나보다.
어떤 풍경에 대한 묘사가 좀만 길어져도 넌더리가 나는 취향이긴하다.
내가 워낙 부가설명이 많은, 잡 생각 많은 편이라 그런지, 붙임보단 제거에 더욱 마음이 간다.
더 팔 것도 없는 가슴이란 말은, 사랑에 다친 적 있다면 누구나 눈길가는 구절아닐까.
이렇게 사랑한 사람, 진짜 사랑했구나. 참 아름답다.
하나 장담하는 건, 그의 가슴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10.
너는 무슨 꿈으로 온 나비이기에
붙잡아도 붙잡아도 날아갈 것 같은가
너는 햇살인가 눈물인가
너는 무슨 강물로 빚은 노래이기에
사랑도 눈물도 흘러넘치는가
너는 무슨 죽음으로 벼룬 육체이기에
나는 이토록 네게 침몰하고 싶은가
/민용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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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좋아하면, 나만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렇게 좋은 게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면 어떻하지 두려워 지기도 한다.
침몰.
이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러게 참 우습다. 많이 좋아하면 왜,
자신이 호화스러운 크루즈일지라도,
정박이 아닌, 침몰을 한다.
왜 우리는 그 사람에게로 침몰하려 하는가.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목적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다른데로 가기 싫은 마음.
어떻게 침몰이란 알맞은 단어를 생각해냈는지.
대단하다.
침몰된 배를 다시 일으키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도 대단하고,
침몰된 배를 가꾸며, 집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사랑의 이런 속성을 이해하면, 남을 더욱 이해해줄 수 있고,
나 또한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1.
너니까, 너라서, 너 때문에 이 지옥에 있었지.
/이영주, 병 속의 편지
내 사랑은
탄식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황혼의 나라였지.
/이정하, 황혼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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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한 시가 너무 많아서 간추리려 했지만, 이것은 꼭 소개해주고 싶다.
너무 맞는 말이다.
우린 사랑을 하면서, 일종의 지옥도 느낀 것 같다.
나만 아프지, 이러면서, 근데 결국, 알게된다.
지옥과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황혼의 나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너무 지옥에 대해 원망할 필요도 없다.
황혼의 나라. 너무 아름다운 표현이다.
하늘이 주황색이 된, 성에 있는 게임 속 풍경이 연상된다.
이런 풍경에선, 두 사람은 해지는 걸 아쉬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12.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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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시라서, 시집이든 뭐든 여러 컨텐츠로 몇 번 접한 시이다.
사랑을 하면 모든게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이 되어버리는 걸 참 잘 표현한 시이다.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이, 모든 원인과 목적이 한 사람에게로 향하게 된다.
요즘 간편한 사랑과, 마음을 다 주지 않는, 어찌보면 세련되보이는 사랑이 유행인 것 같다.
특히, 몇몇 유튜브에서, 마음을 다주는 사랑을, 다치는 사랑을 아예 잘못된 행동이라고 가르치며,
마음을 다 주지 않는 사랑으로 책팔이를 하고 있는 유튜버들을 봤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사랑에 대한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넘어, 맘이 다치거나, 맘 약한 사람들이나, 잘 팔린다.
우리끼리 뭔가를 깨달았다고 소속감과 우월감을 조성하고, 집단 딸딸이를 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꽤나 마음이 다친 사람에게 이런 최면이 잘 먹히는 이유는,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받은 아픔, 상처가
단숨에 자신이 바꿀 수 있는 행동양식과 마음가짐으로 환원되기 떄문이다.
사이비 단체가 주관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꼬실 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또 원래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에게도 듣기 좋은 소리를 하니 꿰이는 거고.
이런 사람들이 더욱 역겹게 느끼도록 하는건,
말도 안되는 논리에 특별성을 부여하고, 자신들이 논리적인줄 안다.
길게 비유할 것도 없다.
사랑을 모험과, 꿈과, 돈, 희망하는 모든 것으로 다 바꾸면 된다.
모험이랑, 꿈을, 돈을, 희망을 안하면, 당연히 덜 다치는 건 당연하다.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누구에게는 다쳐도 그만한 가치와 보상이 있기 떄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박의 올인의 개념을 애써 눈을 가려가며,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당연히 모두가 꿈을 크게 꿀 필요도, 돈을 많이 벌 필요도, 모험을 떠날 필요가 없는 것 처럼,
이 사랑의 형태가 틀렸다고 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하나의 사랑의 형태를 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게 웃기다는 거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특히나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합의를 찾는 게 중요한거지.
이건 역지사지로 행복하게 잘 생활하는 노부부한테,
불타는 사랑을 안하냐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떠드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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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고쳐야 하고, 사회와 관계에 부자연스러운 짐 덩어리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 역사에 진화라는 이름으로 매우 정교하게 쌓인,
우리의 감정은 최신 버전이다.
그 감정을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알아가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다.
과학적 사실은, 성격은 유년기에, 특히 애기때 대부분 결정되고, 잘 바뀌지 않는다.
편협한 사랑관에 자신을 가두고, 자신이 이상하다고 괴로워하지 않길 바라고,
자신에게 맞는 사랑을,
모두가 찾으면 좀 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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