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피에 대해 담담히 쓰려 한다.
피할 수 없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새벽 4시까지 피씨방에서 게임하다 왔는데,
아버지는 회를 사 오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부모님께 거짓말 하는 것도 습관이 돼서 아주 약간의 죄책감만 들었다.
최근들어, 아버지가 조금 미웠다.
왜 그렇게 공기업을 준비하라는 것을 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이란게 도대체 어떤 가치인지.
처음 이 것을 아버지께 들었을 땐 꽤나 괴로웠다.
하지만 사람들과 나와 많이 느꼈던 차이여서, 그만큼 외로웠던 기억도 많고, 잘 인지하고 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자식 잘되기 바라는, 자식에게 관심 많은 열성 부모님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내가 바라는 건, 원하는 건 그게 아님을 말해드려도.
나는 그래서, 이번에 먼저 다가가기로 했었다.
아버지는 삶의 어떤 가치관을 들고 있으시고, 어떤 목표를 두시는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 결론은 아버지는 공부가 좋아서,
큰 계획이나 목표라기 보단, 공부가 좋아서 하다보니, 운이 따라주어서 교수가 되었다고 했다.
"아 그럼, 아빠는 큰 목표나 가치관을 따라간게 아니라, 공부하다보니 잘 풀린 거네요."
난 이어서, 삶의 목적은 없이 태어나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느냐.
그래도 아버지는 공기업을 추천하고, 장점도 말해주는데, 나는 조금 특이한 것 같다고,
몇 번 말했다시피 안정적인, 여유롭다는 요소는 크게 내 관심을 끌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덧불여 아버지는 당연히 나보다 많이 경험하면서 많은 지혜를 얻으셨을텐데,
아버지가 이 안정적인 삶이 주는 직업을 추천하고,
또 동시에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참 쌩뚱맞은 말을 하셨다.
이미 태어난 것만으로도, 사람은 뭘 하지 않하더라도
태어나야만 하는 이유의 70퍼센트는 있다 믿는다고 했다.
너가 길거리를 지나감에도, 많은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그 가치의 차이를 절대 가릴 수 없다고 했다.
중요한건 어떤 삶을 살든, 뭘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닌,
순간 순간 행복을 느끼라는, 매사에 감사하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사람의 길은 결국 돌아서 가든, 어떻게 가든 가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공기업은 위아래가 투명해서,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도대체 내 질문을 제대로 듣고 말하신 건지 이해가 안됐다.
난 그럼 전공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다 해당되지 않느냐 하니.
왜 굳이 돌아가냐고 했다.
아버지는 그래서 대학 전공 선택할 때, 신중히 선택해라 했지 않냐 했고,
난 잠시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이 바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 너 처럼, 멋모르는 나이 때, 대학 전공을 선택했으나,
의대생의 대부분이 의사가 되고, 간호대의 대부분이 간호사가 된다고.
취업준비생으로 열심히 하는 애들이 똑똑한 애들이라 했다.
이왕 시작한 일이면, 최소한 도전은 해보고, 몇 년 일하다 포기하는 게 맞지 않냐고.
아버지는 이 말을 오래 참아왔을 것이다.
쌩뚱맞은 말들도 왜 하신건지 뒤늦게 이해가 됐다.
아버지는 핵심은, 어떤 직업을 가져도, 현재 상황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직업에 귀천은 없고, 어떤 직업을 택하든 행복과 가치를 느낄 수 있으니,
되도록 여유 시간을 제대로 보장해주고, 어느 정도 위치와 위 아래 간섭, 경쟁이 덜한
공기업을 추천하신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서 그렇지만
내 말은 자주 그리고 길게 끊겨서, 어디서 끊겼는지 되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긴 대화 중에 날 후려친 말은 회피였다.
회피.
생각 안해본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랑 전공이 너무 안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또 회피한 건 아닌지. 너무 전공을 버리려고, 경험도 안하고 버리는 건 아닌지.
그래, 나아주시고, 키워주셨는데,
보답해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취미로, 여가시간에 하면 되는것 아닌가.
직업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이고, 나를 나타내지 않는다.
싫어하는 걸 좀 하면 어떤가? 더 좋아하는게 있을 뿐, 넌더리나게 싫지도 않다.
무엇보다 내 책임으로 시작한 일인데, 지원해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꽂고 싶지 않다.
증오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과거가 머리를 쳤다. 갑자기 못풀던 퍼즐을 찾았다.
철 없이 여겼던, 고등학생 때, 중학생 때를 생각해본다.
직업적 가치, 그것은 가벼운 거였다.
철 없던, 과거에 대해 기억해본다.
꿈이 없었고, 그냥
꿈이 아니라, 이상이었다. 난 그 시절이 행복하고, 참 많이 기억난다.
그 순간이 기억난다.
좋은 대학, 성적 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고, 낮으면 안 좋고.
용돈 받으면 기분 좋고, 용돈 낮으면 안 좋고.
이 어떤 개념이 없던 상태를 신기 하게 바라보고, 그때의 나는 그냥
생각이 없다로 치부했었는데,
그냥 그 순간이 행복해서, 어떤 큰 망상 같은 건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내 망상에 내가 취해있던 건, 현실을 도피하고 있던 건 아닐까.
이 꿈에서 도망친 느낌, 망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정말 몇 년 만에 받은지 모르겠다.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결국 헛 웃음이 나왔다.
참 꿈 꾸며 산다는 것도, 꿈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미약한 탁월함으로, 또 탁월함이 보이지 않으니, 탁월함을 만들려 회피하려 한 건가.
습관처럼 미루던 모든 것들. 결국 잊혀질 것들.
일단 먼저 말하면
이 꿈의 소실은 그럼 이제 어디를 향해야 하나.
어떤 확답도 못하고, 눈으로 주르륵 흐른다.
공기업 가기. 가 부모님의 희망이라면, 한 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허리 굽고, 목 튀어나온 나를 보니, 슬프다.
내 자신을 큰 이상으로 언제부터 덫칠했었나
이제는 그때의 나, 그리고 남들이 이해가 좀 되는 것 같다.
그냥 밤을 세서 오늘 느낀 것을 정리해봐도
역시 너무 아프다.
꿈이 눈물로, 헛된 망상이 눈으로 새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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