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를 공부 중이다.
한국사 시험에 대해 불만인 점이 있다.
한국사 자체가 너무 작아서 보잘 것 없다거나, 국가주의적인 것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거나가 절대 아니다.
다른 나라 역사 시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사 시험이 시험을 위한 시험, 어떤 쓸모나 취지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아니 좀 쓸모와 연관있시키려고 회의를 하다가,
매우 보수적이고, 암기력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역사학자들의 반발로,
여러 다툼 끝에 중간에 지쳐 관둬서 더 애매해지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
1.
어떤 학문이든, 학습함에 있어서, 쓸모를 위해 배우는 것 아닌가.
역사 자체가 쓸모 없다는 미친 소리를 하려는게 아니다.
역사는 특히, 역사가 주는 교훈을 다 없애더라도,
역사에 대한 지식 자체가 현대 사회에 도움되는 것이 많지 않나.
역사적인 장소나, 유물들은 배경을 모르면 재미없지만,
그 안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알면,
사람들은 매료되고, 그 전체적인 풍경에 전율한다.
이 느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건 어떤 것을 좋아함에 있어서, 감동에 있어서 매우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난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놀란게, 이 것에 도움을 주긴 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재미없게 만든다고 느꼈다.
이게 내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다루는 내용이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확신한다.
기독교의 내용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바티칸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그냥 베드로의 시신이 안치된 성전이란 표지판을 보면, 그냥 그런 웅장한 성당이지만,
그 베드로란 사람이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사도.
그럼에도 예수를 별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제자들 중 뭔가 신성하다기 보단, 인간적인 제자.
그런 그가 초대 교황으로 불리게 했던, 그와 신과의 상징성,
그와 예수와의 여러 이야기,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베드로와 상징물들(비바 라 비다의 열쇠 등등).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린 그의 순교, 바티칸이 이탈리아 로마안에 있는 역사 등등.
이렇게 2000년이 지난 이야기 임에도, 이런 배경 지식을 들으면,
더욱이 웅장함과 새로운 기분을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게 없다를 주장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물론 건축물의 사이즈나, 웅장함, 인지도는 작을지 몰라도,
한국 유적만의 맛도 충분히 있다.
문제는, 한국사를 배워도 절에서, 여러 유적에서, 현대에 살면서 뭘 느끼기에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 역사의, 유적 자체의 컨텐츠가 미약해서 그런게 아니라,
지식이 부족해서, 그냥 베드로란 사람이 묻힌 성당. 이런 식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유적의 설명서? 봐도 재미없을 것이다.
선종이 뭔지도, 뭐 불교의 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니, 읽어봤자 와닿지 않는다.
설명서는 그냥 이상한 소리만 가득 찬 "나 알아도 재미없어요~~" 이러는 보증서가 된다.
종교가 비록 인도나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하더라도,
종교가 한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상,
기본적인 것은 가르치고, 범위에 포함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난 절대 이게 취지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예 종교에 대한 내용을 안다루고 싶으면 다루질 말던가,
교종, 선종에 대한 승려를 암기하게 하고, 교종, 선종이 뭐고, 왜 다른지, 만들어진 이유를 아예 설명해주지 않는다.
불교에 대한 스토리를 그래도 아주 간략하게 알려줘야, 적어도 이야기가 와닿을 수 있다.
불교에 대해 모르면, 대승, 소승, 교종, 선종이 갑자기 어디서, 왜 나타났는지, 와닿을 수가 없고,
그러면 도대체 절에 가도 뭘 느낄 수 있겠나.
절은 그냥 머리를 민 스님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엄숙히 진행하는 재미없는 곳으로만 인식될 것이다.
뭐를 수행하는지, 어떤 걸 믿는지, 뭘 하는지 전혀 모른체 말이다.
그럼 그냥 가도, '나와는 이질적인 곳 - 끝~'. 이 된다.
한국사에선 이렇게 어이없게 등장시키는게 불교 하나 뿐 만이 아니다.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도교, 유교, 성리학 에 대해, 일절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설명이라고 써놨는데, 그냥 그 시기에 믿었으니 외우라고 한다.
이건 그냥 기독교를
"예수를 신으로 여기는 예루살렘 지방에서 유행했던 종교, 이웃과의 사랑, 박애 정신을 주장했다.
12제자들이 유명하고, 로마의 국교가 되어 유럽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고 끝이다.
이걸 안다고, 도대체 뭐가 교훈이 되고, 과거를 통해 현대에서 뭘 느낄 수 있는가?
그냥 아, 성당 많고, 많이 믿었구나! 가 끝이다. 그런식으로 우리나라 절은 그냥 아, 절 많구나가 된다.
물론, 만약 한국사를 약하게 공부한다면, 이런 것도 필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쓸모없는 지식은 디테일하게 외우게 하고선,
정작 중요한 큰 풍경은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토기에 새긴, 민무늬와 빗살무늬가 신석기인지, 청동기인지가 중요하고,
고구려, 동예, 옥저의 결혼 풍습을 거대하게 디테일하게 다뤄놓고,
어떤 큰 사건들의 이유, 배경들을 매우 미약하게, 연관이 안되게 설명을 해놓는다.
이런 큰 배경들과 이에 파생된 유적들에서 자긍심과 교훈을 느끼기 좋은데 말이다.
이런 중요한 스토리가 되는 내용을 쏙 빼놓고,
와! 석가탑 아래에서 세계최초의 목판 인쇄물 발견!
와! 세계 최초의~ !! 자긍심을 느껴라!!
이러고 있다.
시험 치는 연령이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우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그들의 재밌는 신화, 가치관에서 감동과 신비함을 느끼는 거지,
세계 최초의, 아니,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세계 최초의 조각상! 우와! 세계 최초의 토기! 우와! 세계 최초의 똥!
우리가 무슨 기네스북 심사위원도 아니고,
이런 것에 감동을 느끼는 게 아니다.
세계 최초의~ 에서 자긍심을 느끼기보단,
좀 깊은 이유가 있는 이야기들을 부각하라는 걸, 거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지를 느낀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런 것들이 너무 사람을 바보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더러워진다.
2.
이게 차라리, 종교에만 국한된다면 이해를 하겠는데,
아니,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타 나라와의 관계,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가 핵심이 되는데,
적어도 다른 나라 순서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중국을 일본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특히 중국은 나라에 참 정이 안가는 편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깊은 연관으로 나오는데,,
한국사만 공부하면, 현대에서도 화자되는 초한지, 삼국지 등 시대가
우리나라의 어디와 연관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어? 고조선 때, 갑자기 무슨 X나라가 쳐들어 와서,
와! 무찔렀다.
어? 무찔렀는데, 또 Y나라로 바꼈네?
그래 또 당했다.
또 우리나라도 바뀌였는데, 또 뜬금없이 언제바뀐지도 모르는 어떤 Z나라에게 조공을 보냈데.
아니 또 북방의 어떤 민족이, 아니 왜 다른 나란지도 모르고, 언제 먹혔는지, 전성기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쳐들어 왔데!
몽골이 쳐들어왔데, 응 왜 생긴지도, 왜 쳐들어왔는지도 몰라. 그냥 와서 항쟁했데.
일본이 쳐들어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어쨌든 전국을 통일했데, 그 전에는 뭐지?
몰라, 그냥 처들어왔데? 이순신이 무찔렀데! 와!! 외우자.
그 사이사이의 어떤 나라가 쳐들어왔는지 외워야 하는데, 주위 나라의 나라의 배경은
일절 설명이 없다. "한국사"라는 이유로.
그럼 이게 말이 되고, 이걸 외우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여기서 교훈을 얻고, 어떤 스토리를 얻어서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율리시스가 왜 재밌는가. 오딧세이아,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왜 재밌는가,
왜 삼국지가, 초한지가 아직도 읽히는가?
적어도, 그 상대가 적이라도, 그 상대에 대한 배경이 있어야 재밌다.
원펀맨도 아니고, 우리나라 장수가 다 쓸어버렸어, 대승했어! 이것만 강조하면
재미가 없는 게 당연한 사실이다. 치고박고하는 팽팽함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한쪽 입장에서 가려버린 전투는 재미가 없다.
한국사에, 상대가 무슨 변방의 알필요도 없는, ㅈ밥만 쳐들어 온게 아니다.
우리나라를 만만히 보고 쳐들어오다, 우리가 잘 막아서 국력이 쇠해,
나라가 바뀐 중국의 대국들도 많다.
이런 이야기에서, 우린 중국에 비해 월등히 약한 나라가, 속국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야 하는데,
한국사만 읽어보면, 그냥 툭 찔러보는, 항상 도움만 받는 나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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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사를 배우는 이유는 뭔가. 아까 쓸모라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에는 애국심도 고취시킬 수 있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판단할 수도 있다.
나는 한국사 전체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어느정도의 교훈을, 꼭 알면 좋은 내용이라 생각하는 것도 많다.
하지만, 정말 쓸데없는 디테일과, 부족한 시험 위주의 지식들이 너무 많다.
더 화나는 건, 과도한 디테일에 비해, 아예 없다시피 하는, 전체적인 풍경을 그리는 파트이다.
충분히 재밌을 수도 있는 한국사를, 정말 재미없게 다룬다.
난 한국인이 알아야할 건, 동예가 민며느리제인지, 고구려가 서옥제인지, 헷갈려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느 왕 때, 어떤 정치 기구가 설립되고, 무슨 벼슬이 폐지되었는지, 탑의 생김새나, 지붕, 무덤 모양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 자긍심이 되어, 또는 어떤 과거의 잘못, 수정할 점이 되어 한국사가 기억되길 바란다.
도대체 한국사시험의 의도는 뭔가.
박물관에서 어떤 토기나, 어떤 유적이나, 무덤에 들어가서 지붕모양을 보고,
어느나라인지 맞추는 고고학자 양성을 위한 건가.
고려시대 정치 기구를 줄줄 외우며 전혀 쓰이지 않는 지식을 맞추는 지식왕 양성인가.
아니면 시대 별로 다른나라와는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어떤 풍습이, 국민에게는 어떤 가치관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시민들은 사계절을 어떻게 지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