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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후회와 감사, 출항의 날

잠은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는데, 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어릴 때 침대없이, 딱딱한 바닥에서 자던 습관 때문인가,

일주일 가까이 자위를 하지 않아서 체력이 남나,

난 운동을 쉬다가 오랜만에 해서 근육이 부으면, 가끔 악몽을 꾸는데, 운동을 해서 그런가.

상당히 잡치는 기분으로 5시쯤 일어났다.

꿈을 꾼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파악한, 날 흔들어 깨운 생각은, 이제 이사를 간다는 것,

3년간 살던 정든 지긋지긋한 좁은 방을 떠나기로, 드디어 결정했다는 것,

집에 내려간다는 것, 졸업했다는 것.

 

오늘, 남협이가 대학생활을 마치고 이사를 간다.

그리고 나도 어제 3년간 살던 내 방을, 떠나기로 선택했다.

 

 

 

 

어제는 정말 최고의 날이었다.

신이 나를 위해 기쁨을 몰아놓은 것 같은 날. 참 오랜만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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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이였냐면,

이삿짐을 가지로 오신 남협이 어머니가 사주신,

맛집 통나무집 닭갈비가 줄이 너무 길어서, 간 큰지붕 닭갈비.

닭갈비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내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인생 최고의 닭갈비였다.

흔한 고깃집같은 닭갈비 집이 아닌, 2019년에 건축 디자인으로 상을 받은 집.

한국식 가옥의 큰 지붕과 유럽의 엔티크한 소품들과 현대식 정원과의 조화,

바로 보이는 소양강은 조화를 이루었다.

마지막에 나온, 동치미 막국수의 면이 별로 였던 점을 빼면, 정말 최고였다.

난 누가 춘천에서 닭갈비 집을 추천해 달라하면,

정말 애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큰지붕 닭갈비를 추천할 것이라고, 최고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닭갈비 집 하나 때문에, 너무 집에서 멀리까지 가는 것 아닌가 했지만,

재현이의 차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이미 여행으로 바뀌었다.

우리 세 명은 날씨가 너무 좋다는 말로 시작해, 올초 1월 1일에 새벽에간 대룡산 정상을 찍고 돌아오는 기분, 

재현이와 옛날에 간 발리를 말하며, 여행을 가자고 떠들어댔다.

닭갈비를 먹은 후, 이왕 온 거, 세 명에서 소양강 주변의 카페를 가자 했다.

 

모든 악조건이 최고의 조건으로 바뀌는 날이 있다.

재현이와 대 운동장을 가려 해서, 반팔에 트레이닝 바지였지만, 사진이 매우 잘 나왔고,

사진을 못찍는 나는 친구들에게 사진찍는 법을 배우며 즐겁게 연습했다.

춘천 예쁜 카페를 검색해볼 때 본, 얼핏 이름만 본 것 같은 카페였는데,

겉 모습에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펼쳐진 경치 호수와 잔디, 소파에 입에서 우와 소리가 나왔다.

베터리가 나가버렸지만, 오히려 폰을 내려놓고, 경치와 이야기, 지금 순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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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대학 생활 중에 겪은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대학생활을 만족한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잘 살지 못한, 모든 걸 어정쩡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망한 대학생활일 테지만,

누구보다 많이 방황했고, 갈등했고, 폐인도 되고, 후회도 하며, 나름의 최선으로 채웠다고,

내 방황을 더 이상 후회하지 않고, 감사와 빛나는 순간으로, 청춘으로 기억하겠다 말했다.

날 생각해줬던 모든 사람과, 일어난 일, 방황, 청춘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이겨내려 발버둥 치던 나에게, 정말 감사하다.

자책만 했던 나를 좀 용서하기로 했다, 내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4년의 춘천 생활 동안 처음 가보는 신북읍 쪽에서 돌아온 후,

스터디 카페에서, 위대한 게츠비를 마저 펼쳤고,

항상 듣던, 위로나 반항의 노래가 아닌, 사쿠란보가 갑자기 너무 좋아져서 무한 재생했다.  

또 우리 과 졸업생 친구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1시에 사진을 찍기로 계획했다.

빠진 날이 더 많은, 기간이 하루 남은 헬스를 갔고, 게츠비는 제일 흥미로운 부분,

데이지와 게츠비가 닉의 집에서 만나는 순간까지 읽었다.

집에 와서는 자기 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돈 치킨을 좋은 친구들과 먹었다.

 

 

 

 

뭐,, 하지만, 또 이렇게 불안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좋은 어제를 보냈으면서, 오늘 과 친구들과 사진찍으로 한 기쁜 날인데, 

오늘뭐에 불안할까, 하나하나 파악해보니,

역시 미래가 두렵고,

미래 없이 집에 가는게 두렵고,

떠나는게 두렵다.

실존주의의 강제로 주어진 자유와 책임이 떠올랐다.

정답이 없는 선택에 책임을 고스란히 내 책임이다. 이사를 다시 고민해본다.

 

내 무모하리만큼 큰 기대는 커녕, 평균적인 학부 졸업생에 대한 기대에 못미치니,

나 스스로도 아쉬운 결과이긴 하다.

또 나 자신의 과거를 좋은 기억으로 수긍한다 해도,

많은 자존감을 읽어버린 상태이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게으름이 더 심해진 걸 보아, 완벽주의를 어느정도 들고, 회피한다는 걸 안다.

내 무의식은 생각보다 더 크게 상처받아,

자신에 대해 두려움과 의심이 더 커진 것 같다.

이 친구랑 화해는 했으니, 용기도 줘야 한다.

 

수 많은 날을 괴롭혔던 압박감과 가정들,

노력해야한다.

성공해야한다.

남들과달라야한다

차가있었다면?

좀더후회없이노력하는하루를보냈으면?

내가하고싶은걸더적극적으로했다면?

좀더잘해다면?

사람의마음을알았다면?

좀더용기가있었으면?

 

다 괜찮다. 지나간 시간으로 의미를 만드는 건 온전히 내 책임이고, 내 몫이다.

이런 과정중에서, 분명 실패만 한 것도 아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랬기 때문에 얻어갔던 것들이 크다.

지금 얻어간 것 중 써야 할 건,

내 감정은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것과 

인생을 단 하나의 창문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이번에, 게츠비를 읽으면서, 이 하나의 창문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크게 와닿는 구절이었다.

나는 이것 저것의 창문으로 정확히 보려 하고, 창문을 수시로 뜯어 고치고, 나에게 맞는 창문인지 의심했다.

이런 노력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치더라도 무조건 세상을 보는 맞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창문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역겨웠고, 그런 세상의 창을 증오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 앞서서, 어느샌가 다른 사람의 창문을 보고, 비판하는 것에 중점이 옮겨진 것  같다.

나도 여러 창을 봐왔고, 최대한 이쁘게 가꿨으니, 이젠 우직하게 하나를 바라볼 차례이다.

나에게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지금까지 충분히 대상을 정확히 보려고, 아름답게 보려고, 잘 닦고, 비교해왔으니, 나름 멋진 세상을 볼거라 확신하다.

이제 세상을 감상할 차례이다.

 

다시 한번, 

내가 알게 모르게 상처입혔을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내 부족함에서 나오는 오만함과 독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무시하고, 비판했는지,

죄송하고, 소중한 시간을 채워줘서 감사하다.

 

내 감정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니, 삶은 참 큰 행복이다.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뭐, 총 6년의 시간동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힌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며,

미약한 기도를 하며 축복을 빌어주려 한다.

자격 없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일 나가는 서표를 깨울겸, 기분전환을 위해 6시에 사쿠란보를 틀었는데,

처음으로 가사를 봤다.

가사가 너무 이쁘다.

다시 시작이구나, 출항의 느낌을 준다.

아무리 잘못한 것이, 후회할 것이 있어도,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진짜 사랑은 존재한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알려주는 느낌이다.

순항이던 아니던, 결국은 표류가 아닌 항해가 되길, 그 자체를 즐기길.

 

1866 년 티 레이스 중의 바다 위 아리엘호와 태핑호 / 잭 스펄링 유화 :: 그림에 대한 역사와 상관없이, 이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그림 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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